이 글은 아고라 네티즌과의 활발한 토론을 위해 창조한국당 서울시당에서 참여한 글입니다.
지난 10월 8일 광주 광산구 신창동 모원룸 2층 창고에서 주부 이모씨(27)가 목을 매어 숨졌습니다.
“먼저 가서 미안해. 신발이 작아 발이 아프다는데도 사주지 못해 미안해.”
그게 스물일곱 살, 젊은 엄마가 7살, 5살배기 철부지 아들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녀는 8일 오전 자신의 원룸 창고의 가스배관에 목을 매었습니다. 그녀는 사업에 실패한 남편과 이혼한 후, 두 아이를 데리고 식당에서 일하면서 원룸에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사회의 또 한켠,11월13일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종부세를 사실상 와해시키는 일부위헌판결을 내려서 다시 한 번 우리사회가 기득권층위주로 흘러가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위의 두 사례는 분명 직접적인 연관성은 적어보입니다.종부세를 환급받는 일부계층이 27살의 젊은 엄마를 '직접적으로'죽음으로 내몬 것은 아니니까요...그러나 두 사건이 전혀 상관없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우리사회의 양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예로 든 두 사건이기도 합니다.
예의 어머니의 자살을 우리는 인내심이 부족하다거나 자식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라는 말로 애둘러 외면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하늘아래 같이 부데끼며 사는 어느 모성이, 자라나는 자기 아이의 커가는 발에 맞는 신발 한켤레 사줄 수 없는 기막힌 가난과 무기력함때문에 자신의 모진 목숨을 끊어야 했던 이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만 할까요?
우리사회는 사회적 양극화,자산의 양극화,사교육의 창궐과, 돈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성벽이 점차 강고해지고 있는 '물질만능/승자독식'이 상식인 사회로 점점 고착화되가고 있습니다.'국민성공시대'를 꿈꾸며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지만 결코 그것은 말그대로 꿈이며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고용의 기회와 공정한 경쟁의 룰은 존재하지 않고..그리고 사교육의 만연과 자산의 양극화에 의해 유아적부터 편갈라지는 세상에서 꿈과 현실의 극명한 괴리를 하루하루의 절망으로 곱씹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대다수 사회적 약자의 실제 처지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6,70년대를 거치면서 초근목피의 절대빈곤을 이겨내 왔지만 반대로 우리 전통사회의 어른들께서 항상 귀가 닳도록 하셨던 말씀들.."이웃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의식"은 점차 희소해지는 가치로 사회의 한 구석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오직 무한경쟁과 기회의 선점..상대방을 배려하기 보다는 남이 죽어야 내가 산다는 치열한 전투의식만이 난무한 황폐한 세상이 되어가는 와중에 우리의 힘없는 이웃은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사회의 냉대에 대한 원망과 한탄속에 자신의 소중한 생을 스스로 끊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국민소득 4만불시대가 되면 우리사회가 꿈의 유토피아로 바뀌게 될까요?
지금같은 고용불안과 자산양극화같은 문제를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따져 묻지않고 외형의 수치로만 GDP를 인구수로 쪼갠 것만을 가지고 살림살이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우매한 태도이며 지금까지와 같은 '상대적 박탈감'과 울분은 사회의 또 한켠에서 사회통합을 방해하고 분노를 저장하며 보이지않는 벽을 더 공고화시키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양극화로 표현되는 문제의 핵심에는 바로 기득권층위주로 흘러가고있는,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사회구조와 경제적으로는 더 이상 신규고용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대기업주도 수출위주 경제기조에 그 문제의 근원이 존재한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기본권에 속하는 국민의 주택거주권이 소수 국가기관의 원가공개 거부와 건설업자와 부동산투기꾼들의 잇권속에 마치 네덜란드의 과거 '튤립파동'을 연상시키듯 한없이 치솟고만 있는 현재의 자산의 양극화문제는 그 책임에서 국가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노릇입니다.그러한 와중에서도 사유재산의 보호라는 명목을 앞세워 서구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턱없이 낮은 수준의 보유세(재산세)부과제도를 한 순간에 뒤엎어버리는 사법부의 행태는 과연 그들의 혼이 대다수 국민들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소수 땅부자들을 향하는지 참 알 수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가 굴러가고 각자가 자신의 노력에 응당한 댓가를 지불 받을 수 있다는 얘기는 새빨간 거짓임이 이미 미국발 경제위기를 통해 전지구적으로 증명되어 가고 있습니다.반칙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를 물고 스스로 제어하기 어려운 속성을 지닌 '자본의 이윤추구본능'을 적절히 제어해줄 수 있는 장치를 국가가 먼저 마련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반드시 제도화해야만 합니다.
중소기업을 살려내야만 경제가 제대로 삽니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은 우리 경제의 허리이며 상대적으로 대기업에 비교하면 사회적 약자인 반면,2000만명을 고용하는 우리경제의 몸통 그자체이기도 합니다.몸통과 허리가 부실한 대기업위주의 경제체제는 외부여건에 의해 단 한 방에 나가떨어질 수도 있는 대단히 취약한 구조임이 차츰 드러나고 있음과 동시에 더이상 신규고용창출에도 무능함이 과거 10년간의 사례에서도 실제로 증명이 되었습니다.이것이 대기업위주의 경제체제의 한계이자 과거 박정희시절의 '개발독재'로 상징되는 권경유착독점경제체제의 종착점입니다.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경제를 새롭게 재편해야만 답이 보입니다.생산성이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미친다는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현주소는 그 역설로 선진국수준으로 중소기업을 육성한다면 그를 통해 수많은 양질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며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널려있는 사회로 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그러한 사회가 된다면... 위의 예처럼 자신의 절망을 하소연 할 곳 없어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불행한 자살이 반복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던 모성이 이러한 사회의 몰인정과 무관심속에 저 세상으로 갔다는 것을 그녀가 남긴 아이들이 철이 들어서 알게 �을 때 과연 그 아이는 우리사회와 기성세대 어른들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지요?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서 다시는 그러한 불행이 반복되지 않고 비록 조금 못살고 없이 사는 사람이더라도 비빌 언덕이 존재하는 '따뜻한 기운이 흐르는 사회'로 방향을 선회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경각에 달려있는 우리사회가 다시금 그 시선을 뒤돌아봐야하는 이유입니다.경제적으로도 민주화가 되야만 전체경제도 튼실해지고 새로운 성장동력도 개발되어 장기적인 선순환구조의 상생이 비로서 가능해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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