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리스트’가 여의도 정가를 강타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전·현직 의원들이 줄줄이 소환조사를 받고 있다. 수사권도 당초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주요 활동무대인 PK지역에서 벗어나 서울로 갈아탔다. 박 회장의 전방위적인 로비에 검찰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 특히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구속과 박진 한나라당 의원의 소환조사는 청와대와 여당까지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그동안 회자됐던 ‘박연차 리스트’에 이름이 없던 인물이었던 것. 따라서 이번 사건의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박 회장의 검은 돈이 친노진영을 넘어 현 정권의 실세까지 흘러 들어갔을 것이라 보고 있다. 태광실업의 세무조사가 시작된 직후 박 회장이 구명로비를 벌인 정황이 검찰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 것. 검찰은 대검 중수부장을 포함해 모두 18명의 검사들로 매머드급 수사진을 구성하고 ‘박연차 리스트’의 실체확인에 총력을 펼치고 있다.
‘믿을 만한 곳’ 보험 들어 둔 박연차, 구속 전까지 ‘큰소리’
‘MB 절친’ 천신일 중심으로 현 정권 실세와 막역한 사이
지난해 7월 태광실업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을 당시만 해도 박연차 회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지인들에게 “특별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큰소리까지 쳤다. 이로 인해 박 회장의 지인들은 그가 믿을 만한 곳에 보험을 들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실제로 박 회장은 끝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는 검찰조사 결과 일정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박 회장은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에게 2억원을 자신의 비서실장인 정승영 정산개발 대표를 통해 건넸고, 추 전 비서관도 이를 인정하면서 지난 3월24일 구속됐다.
“대통령께 누를 끼쳐 죄송”
추 전 비서관의 구속은 박 회장의 로비가 전 정권에 이어 현 정권에까지 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이목이 쏠렸다. 그는 이명박 정부 초기 ‘대운하 전도사’로 불리며 실세로 군림했다. 뿐만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의 선거캠프에도 몸담은 경력이 있어 현 실세들과 인맥이 탄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박 회장이 추 전 비서관을 현 여권 주요 인사들에 대한 징검다리 역할로 활용했을 가능성도 높다는 게 검찰 측의 분석이다. 추 전 비서관의 뒤에 있는 ‘실세’를 염두에 두고 로비를 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한 대목인 셈. 그는 “대통령께 누를 끼쳐 죄송하다”면서도 이상득 의원에게 금품을 건넸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그런 일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청와대에선 추 전 비서관과 선긋기에 나섰다. 추 전 비서관이 뇌물을 받은 시점이 청와대를 떠난 직후인 만큼 개인적인 비리로 치부하고 있는 것. 그러나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퇴직 인사에게 2억원이 갈 정도면 현직 인사에게는 더 많은 로비가 있었을 것이란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박 회장의 청탁을 받고 접촉했다면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총지휘한 한 전 청장이 접촉대상 최우선 순위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한 전 청장은 지난 3월15일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의혹은 점차 확대되고 있는 형국이다. 일각에선 박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가 현 정부로까지 확대되자 현 실세와 맞닿아 있는 청와대에서 모종의 거래, 혹은 검찰이 한 전 청장의 미국행을 방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박 회장의 구속 후 한 전 청장은 이상득 의원의 측근, 이 대통령의 동서 등 현 정권 실세와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골프 및 식사를 했다. 한 전 청장의 자리보존을 위한 청탁자리인 동시에 현 정권 실세들이 한 전 청장을 다독거리기 위한 모임으로 해석이 충분하다. 한 전 청장이 박 회장을 세무조사하면서 전 정권의 비리는 물론 박 회장과 연루된 현 정권 인사들의 비리까지도 파악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는 한 전 청장이 지난해 11월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건너뛰고 이 대통령에게 직보를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직보를 할 만큼 한 전 청장의 보고가 파괴력이 상당했다는 설명이다. 국세청 내부에서도 조사팀장이 세무조사 상황을 국세청장에게만 보고하도록 했다.
권력실세 핵심측근 연루설
현 정부 첫 민정수석을 지낸 이종찬 변호사와 이 대통령의 대학 동기이자 절친한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에게도 파문이 번지고 있다. 이 변호사는 변호사 사무실 개업 보증금으로, 천 회장은 대선을 앞둔 2007년 불법정치자금으로 각각 5억과 10억을 박 회장으로부터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물론 이 변호사와 천 회장은 이 같은 의혹에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나는 동생한테 돈을 빌렸는데 그 돈이 박 회장의 돈인 줄 몰랐다. 나중에 모두 갚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를 비롯해 사정작업을 총괄지휘하는 민정수석이 검은 돈과 연루된 것은 비난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 일각에선 이 변호사와 함께 권력실세 핵심측근도 ‘박연차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검은 돈이 청와대 깊숙한 곳까지 흘러 들어갔는지는 향후 검찰조사 결과에서 밝혀질 전망이다.
천 회장은 박 회장과 오랜 인연을 자랑하는 만큼 채권 채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곧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천 회장에게 10억을 건넨 이유에 대해 “경제 위기로 많은 기업들이 어려웠던 때라 순수하게 지원했을 뿐”이라고 진술했으나 천 회장의 기업은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급성장한 바 있어 신뢰성이 떨어진다.
더욱이 천 회장과 이 변호사는 박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 전 국가보훈처장이 총괄지휘한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와 검찰고발 저지를 위한 대책회의를 수시로 가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대책회의는 말 그대로 국세청 세무조사가 검찰로 넘어가 박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한 자리다.
결과적으로 이 변호사와 천 회장이 박 회장의 구명로비에 적극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 실제 이 변호사는 박 회장의 변호사로 나서려다 청와대가 만류해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 회장은 박 회장에게 추 전 비서관을 연결해준 장본인. 비록 실패한 로비였으나 천 회장과 박 회장은 동향 선후배 사이로 사석에서는 ‘의형제’로 통한다.
박 회장은 천 회장이 현재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는 대한레슬링협회에서 지난 1월까지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또 천 회장은 박 회장이 2006년 농협에서 휴켐스를 인수할 때부터 최근까지 휴켐스의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지역 신발업체의 중견기업인이었던 박 회장이 정재계의 거물로 크기까지는 천 회장의 멘토 역할이 중요했다는 후문이다.
천신일 ‘로비대상’ 확인 중
천 회장은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자 실세로 등극했다. 고려대 61학번 동기인 이 대통령과 학창시절부터 서로 흉금을 터놓고 얘기했던 사이로 알려졌다. 대선 직후인 2007년 성탄절엔 이 대통령과 최시중 방통위원장, 이상득 의원 등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저녁식사를 했을 정도다. 이 대통령 역시 당선 후 바쁜 일정 중에도 고려대 신년하례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따라서 검찰은 박 회장의 주변계좌와 주식 소유 현황을 추적하면서 천씨와의 금전거래 관계를 살펴보는 한편 대책회의의 성격이 무엇인지, 이들이 박 회장을 위해 실제 로비를 했는지, 로비를 했다면 그 대상은 누구였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미연기자
원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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