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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me-아일랜드의 대기근 1845 : 대한민국의 대공황 2009

출처: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

"아일랜드 포테이토" 기펜재에 이어서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475994


가격이 오르는데 수요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감자와 같은 열등재의 반(反)수요법칙적 현상이 기펜에 의해 발견된 것은 아일랜드의 대기근 당시였다... 바야흐로 때는, 영화 타이타닉에서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타고 있던 제일 하층 3등칸의 풍경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수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굶주림과 식민수탈을 피하여 신세계 미국으로 도망을 가던 터였다. 특히 1845-1852을 "아일랜드의 대기근"이라 부르며, 경제사는 물론 세계사에 있어서도 "미국의 대공황"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세계사의 대사건을 꼽으라면 - 네이버에서 다음으로 아고리언 민족의 이동을 빼고 - 훈(흉노)족의 이동과 아일랜드 민족의 이동이 되겠는데, 왜냐하면, 그 발단은 단순히 흉작과 기근에서 비롯되었다 하겠지만, 그 결과는 로마제국과 대영제국이라는 역사상 가장 강대한 제국을 멸망시킴으로써 고대와 근대라는 시대를 종결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공황은 이 점에서 비추어볼 때 역사라는 큰 강물의 작은 파문에 불과하다. 그것은 미제국주의의 출범을 알리는 뱃고동소리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올해의 다가올 뉴-대공황이 팍스 아메리카나에 종말의 나팔을 불어준다면, 2009년은 역사의 거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미국의 실체를 만든 주체는, 조지 워싱톤이나 벤자민 프랭클린등 건국의 아버지들 - 갑자기 뉴라이타가 아버지로 모시는 이승만이 생각나네 - 처럼 잉글랜드계 지주나 부르조아가 아니라, 대기근을 피하여 신천지에 이민온 아일랜드의 가난뱅이 무산계급이다. 그들 프롤레타리아가 어느 정도 재산을 축적하여 좀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할 무렵, 적절히 터져준 것이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요즘 말로 IMF 1 = 대기근, IMF 2 = 대공황을 연속으로 뒤집어 쓴 셈. 그러니까 아일랜드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재수없었던 민족의 하나랄까, 수탈받고 고통받는 민족의 대명사가 되었다.


경제사의 제일법칙 - 모든 경제의 파탄은 자연의 저주가 아니라 바로 인재(人災)에서 비롯한다.


아일랜드의 대기근은 단순히 빈곤층의 주식량이었던 감자가 전염병 때문에 수확량이 줄어 들어 일어난 상황만은 아니었다. 그 비참함은 아일랜드 민족의 1/4을 죽이게 만든 잉글랜드의 식민수탈경제논리가 얼마나 잔혹하며, 결과적으로 식민지배자인 영국 자신을 위해서도 얼마나 파국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언이 된다. 19세기와 함께 피어오르던 대영제국 빅토리아 시대의 풍요와 영광은 오직 아일랜드와 제국 식민지의 가혹한 착취에 기반한 것이다. 런던의 화려한 불빛은 부재지주들의 탐욕과 방탕을 유혹했지만, 그 그늘 밑에는 아일랜드 소작농들의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이 가려져 있었다. 사실 산업혁명이란 소비자를 물질적 천국으로 인도하는 경제의 은혜가 아니라, 그 근본과 전반에 있어서 보다 간교한 인민수탈의 핑계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공산품과 농산품의 불평등교환. 무역경쟁력 강화를 빙자한 콜베르(17세기 프랑스 중상주의자)적 곡물가격 억제정책 (공장노동자의 생존비를 낮춤으로써 제품원가를 낮추려 함 = 농업을 등쳐서 공업을 살림). 공산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역시 싸구려 농산물을 수입하여 노동자에게 쳐먹임 -> 국내농업의 몰락, 전국토의 황폐화 -> 농민의 도시 이주 -> 도시빈민 폭증 -> 서로 살깍아먹기 경쟁으로 노동자의 임금 하락 = 산업자본가의 이익 증가, 도시 집값 폭등 = 도시지주의 이익 증가 ->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 심화... (이제 "싸고 질좋은 미국소"를 먹이고자 하는 이유는 - 광우병을 떠나서 - 미시경제학 교과서적인 소비자잉여의 증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농민의 피폐화와 노동자의 저질화를 통해서 철저한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임이 이해될 것이다.)


경제 그 자체는 생산력의 발전과 무관하다. 왜? 모든 경제문제는 본질적으로 생산의 투입/산출 비율이 아니라 분배의 계급간 비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위정자들이 비율의 학문(logistike)으로서 기하학을 배우라고 했다. 비율(logos)은 곧 정의이므로. 따라서 경제의 문제는 결국 효용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이다. 파이를 먼저 키워야한다는 주장은 본질적인 경제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며, 그 주장 뒤에는 결국 키워진 파이 조각을 독식하겠다는 간계가 숨어있을 뿐이다. 향상된 생산만큼 그 혜택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공정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면, 생산의 향상이란 무의미할 뿐 아니라 몰도덕적이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생산을 하나? 생산을 위한 생산을 위해서?

 

 

아메리카 백년제국 침몰의 역사적 순간이라고 먼 훗날 그렇게 평가되어질 서기 2009년, 이와 함께 드디어 대한민국에 엄습할 경제위기는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보다는 1840년대 아일랜드의 대기근을 연상케 한다... 이 풍요하고 낭비적인 세기에서 예전과 같은 절대적 굶주림의 비참함 때문이 아니라, 오늘의 경제위기는 대한민국이란 땅에 대한 희망을 버리는 이 시점에서 일어나, 한민족의 대규모 엑소더스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곳에는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의 꽁무니를 핥아대던 아일랜드 부재지주들의 간교함처럼 소작농의 쌀직불금이나 뜯어먹는 친일지주들이 있다. 이곳에는 비열한 식민총독이 있고 그의 악랄한 수탈정책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마치 희망도 미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버리고 퀸스타운을 막 출발하는 타이타닉에 몸을 던져야만 할 것인가? 그래서 어느 차가운 바다 속에 빠져죽든지... 운 좋게 새로운 땅에서 새로이 시작하든지... 아니면, 아니면... 올해를 대한민국의 새역사가 시작하는 진정한 혁명의 원년으로 삼을 수 있을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