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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살려주세요!)....하반신은 상어밥이 되더라도.... [17]
하반신은 상어밥이 되더라도 상반신은 살려주세요.
나는 정신적으로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안정되고 신념에 차 있으니 걱정 마시오. 과거 여러 번 생사의 위기를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현재가 얼마나 감사하오. 내가 바다 가운데 던져지기 직전에는 심지어 하반신은 상어 밥이 되더라도 상반신만이라도 살기를 바랐어요. <김대중 옥중서신 30쪽, 1977년 6월 23일자>
1973년 8월 8일 오후 1시경. 일본 동경 시내 그랜드 팰리스 호텔 2212호실을 나서는 순간
2210호와 2215호에서 나온 6명의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김대중을 습격하여, 김대중의 팔과 목을 잡고 2210호실로 끌로가 마취제 수건으로 김대중의 입을 틀어막다. 이후 요원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김대중을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하던 중에 17~18층에서 일본인 두 명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했고, 김대중은 일본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일본인들 7층에서 내리다......
오후 8시경 납치범들은 김대중의 코만 남겨둔 채 테이프로 얼굴을 감싸고
손과 발을 묶어서 방으로 옮기다. 오후 10시경 다시 자동차에 실려 1시간가량 이동한 후, 해번가에 도착하다. 8월 9일 새벽 0시경 모터포트로 옮겨지고, 배로 1시간정도 이동하다. 오전 1시경 중앙정보부 공작선인 용금호로 옮겨지다. 이때 김대중은 팬츠와 셔츠만 입고 있었고 배 밑바닥으로 옮겨지다.
범인들은 김대중의 얼굴을 싸고 있던 테이프를 제거하고,
손을 머리위로 모아 묶은 뒤, 오른손에 쇠로 된 추를 묶다. 그리고 양쪽 발을 묶고 50kg가량 되는 도 다른 추를 달고, 김대중의 입에 재갈을 물린 채 눕혀 놓다. 항해도중, 배 위로 비행기가 나타나고 빨간 불이 번쩍거렸고, 그 후 10시간을 더 항해하다.<김대중 옥중서신 522쪽>
김....대....중!
1973년 그의 정적이었던 박정희대통령이 유신통치의 철권을 휘둘렀던 1973년 8월 낯선 이국 땅 일본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서 상어 밥이 될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그는 하느님께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반신은 상어 밥이 되더라도 하반신만이라도 살려달라는 이 간절한 기도가 어쩌면 오늘의 <위대한 김대중>을 만든 의지와 신념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대중! 그는 네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합니다.
첫 번째, 6. 25당시 공산군 감옥에 갇혀 220명의 재소자중 140명이나 학살되는 가운데 탈옥해서 살았던 일. 두 번째, 1971년 국회의원 선거 지원을 하러 이동하던 중 14톤 대형 트럭으로 김대중이 탑승한 차를 들이받아 교통사고를 빙자한 살해 음모에서 살아난 일. 세 번째, 앞서 말한 동경납치 사건에서 극적으로 생환 일, 네 번째,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살아난 일. 그러나 그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한 번도 삶을 포기하거나 가해자들을 증오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난 8월 김대중 대통령님이 서거하셨을 때 어느 인터넷 매체로부터 추모사 원고청탁을 받고 이렇게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남북통일을 위해 온갖 고초를 마다하고 평생을 싸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이익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마치 고난 받는 예수처럼 형극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군사독재에 의해 들씌워진 빨갱이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남북분단의 언덕을 넘어 온 몸에 못이 박히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동해 앞 바다에 수장될 뻔하기도 했습니다. 80년 광주항쟁의 한 복판에서 군사정권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의 공포에 떨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육체만 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고 꼿꼿하게 당신의 정신도 살아남았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통일에 대한 열망은 당신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때 오히려 당신의 신념과 집념으로 더욱 거세게 살아났습니다. 저는 압니다. 당신은 탄압의 고통 속에서 더욱 빛났고 감옥살이를 하면서 더 많은 지식과 식견을 넓혔습니다. 당신의 해박한 지식과 탁견은 당신의 성실함의 소산일 뿐만 아니라 고난 속에 핀 꽃 인동초라는 사실을 국민들은 압니다.”
김대중을 읽으면 세상이 보인다.

김대중을 읽으면 삶이 강해지고 풍요로와 집니다.
조금 비싸고 500쪽이 넘더라도 꼭 사서 읽는 센스^*^
그는 가고 이 땅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열망하며 숨 쉬었던 이 땅 한반도에 그가 남기고 간 족적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인간 김대중에서 대통령 김대중까지> 그가 남긴 업적과 일화는 너무도 많습니다. 며칠 전 저는 그가 극악한 교도소 상황에서 그는 무엇으로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그의 신념을 지켜왔는지를 다시 보았습니다. 그가 남기고 간 수많은 저서중에서 그를 가장 읽을 수 있는 책이 바로 <김대중 옥중서신>(시대의 창 출판사)이라 생각합니다.
둥실뜬 저구름아 너를빌려 잠시돌자.
강산도 보고싶고 겨레도 찾고싶다.
생시에 아니되겠으면 꿈이라면 어떨까.
(-1982년 청주교도소에서.)
이제가면 언제올까 기약없는 길이지만
반드시 돌아오리 새벽처럼 돌아오리.
동아와 종을 치리 자유의 종을치리.
(-1982년 12월 23일 미국으로 출발을 앞두고)
저는 어쩌면 지금까지 김대중의 단편만을 본 외눈박이였는지 모릅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평하는 평론가의 입장에서 그가 이룩한 업적중심으로 그를 보았는지 모릅니다. 유사이래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열정과 업적, 초고속 인터넷망의 구축을 통한 지식정보화 산업의 기반구축, 그리고 한류의 융성발전 진흥을 통한 문화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점 등에 저는 그의 탁견과 혜안을 존경해 왔습니다.
김대중 마지막 비서관 최경환씨를 만났습니다. 술한잔 했습니다.
며칠 전에 동교동 사저를 지키며 김대중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일컬어지는 최경환비서관을 만나 술한잔을 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마포 지역구이기도 하지만 항상 묵묵하게 김대중대통령 곁을 지켜주었던 최비서관님이 고마워서 감사 겸 위로 겸 자리를 함께 한 것입니다. 좀 더 일찍 하려 했지만 49재를 마치고 하자는 최비서관의 요청에 따른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제가 읽은 <김대중 옥중서신> 독후감을 말했습니다.
“최비서관님! 저는 지금까지 김대중 대통령님을 위대한 정치가로만 알았는데요....
이번에 보니까 위대한 사상가요, 위대한 철학자요, 위대한 신학자이면서 위대한 역사평론가임을 알았습니다. 이 분께서는 현실에서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을 구원하신 예수의 모습, 즉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믿음과 행함이 일치해야 한다는 신앙관을 보았습니다. 노예제도 철폐와 인종차별 정책 반대 그리고 착취구조에 대한 외면에 대한 기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옥중서신의 많은 분량은 예수님의 진정한 민중사랑에 대한 내용과 그를 닮고 싶은 김대중대통령의 희원을 썼습니다. “예수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 심자가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웃사랑을 통한 하느님 사랑이요, 이웃사랑을 위해서는 목숨조차 바친 예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옥중서신 36쪽)라고 쓰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못으로 눌러 쓴 열정.
김대중 대통령은 감옥에 있을 당시 집필권이 물샐틈없는 감시를 뚫고 못으로 종이에 눌러 쓴 편지에서도 당시의 정국에 대한 전망과 투쟁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내보냅니다. 지도자와 국민이 똘똘뭉쳐 싸워 감옥을 채운다면 유신정권도 어쩔수 없이 백기를 들것이라는 그의 감옥 속의 절규도 읽었습니다. 또한 이희호여사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감사 그리고 아버지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세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그들에게 일어야 할 도서목록까지 적어서 일독을 권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학문이나 지식에 있어서는 권위에 맹종해서는 안 된다. 존경은 해도 비판의 눈은 견지해야 한다. 모든 지식은 내 자신의 비판의 그물에서 여과시켜 받아들여야 한다. 설사 그것이 미숙하고 과오를 범할 경우가 있더라도, 내가 나로서 사는 유일한 지적 생활의 길이기 때문이다.”(옥중서신 472쪽)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잘못한 점은 무엇일까요?
그랬습니다. 그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니체의 위대함을 평가 하면서도 천박한 여성관을 가졌던 그들의 한계를 비판적 시작으로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수도의 위치를 설명하면서 신라가 통일 했으면서도 수고를 북방으로 전진배치 시키지 않고 계속 경주에 머물렀던 비진취성을 꼬집기도 합니다.
김옥균의 오류
1880년대 김옥균의 갑신정변의 방향이 옳았음에도 그가 해방시키려 했던 민중들과 손잡지 않고 외세의 등을 업는 방식의 오류로 결국 그가 도우려 했던 민중들의 돌팔매를 맞았던 뼈아픈 교훈과 갑오동민혁명의 전봉준에 대한 존경심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중국과 소련의 관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관계 등등 세계사를 압축요약해서 내놓은 그의 해석능력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밥짓는 아주머니에 대한 배려
김대중대통령 마지막 비서관 최비서관께 이런 내용으로 대화를 했습니다. 그러자 최비서관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의원께서 말한 내용이 모두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곁에서 지켜본 매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분은 원래 여행을 그리 썩 좋아하시는 편이 아닙니다. 밖을 나가면 여러 비서들이 고생하고 일정잡고 할 일이 많거든요....그런데 정말 며칠씩 여행을 가자고 하신 일이 몇 번 있어요. 저도 처음엔 몰랐는데요...집에서 밥 하는 아주머니 휴가를 주려는 배려입니다.”
“김대중대통령님은 굉장히 여성스럽고 수줍음을 많이 타십니다.
그런데 대중 앞에서 의견을 말씀하실 때는 단호하고 결연하시죠. 그런데 항상 큰 것과 작은 것에 대한 치우침이 없으신 분입니다. 세계와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시면서 당신 주변에 있는 비서들 생활을 일일이 챙기시고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하셔요. 저에게 금연을 하라고 말씀을 많이 하셔서 엘리베이터를 타면....“향수 쓰지 말아요.”라며 우회적으로 걱정해 주시곤 했습니다.”
김...대...중
그는 가고 없습니다. 아니 그러나 그는 한반도를 터 삼아 살아가는 남과 북 모든 배달겨레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평생 온갖 박해와 수모와 탄압을 받으면서도 그 가해자를 증오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음으로 내몰린 상황에서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진정 사랑을 실천한 의인이었습니다. 인간이건, 동물이나 초목이건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을 주는 것이다. 생명을 준다는 것은 상대의 진정한 성장을 돕는다는 것이겠지요.”(옥중서신 422쪽)
노무현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오열하던 김대중대통령님의 사진을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강요된 죽음”이라 규정지었습니다. 그 강요된 죽음의 수식어가 <김대중의 마지막 일기>에는 사정상 삭제되었습니다.
원본에는 (이명박 정권에 의해) 강요된 죽음이라고 합니다. 생명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이런 철학이 있기에 그는 영결식장에서 그토록 오열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부당한 정권은 국민을 이기지 못한다.
독재는 민주주의를 이기지 못한다.
이명박은 노무현 김대중을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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