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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이 시대극/경제+정치+사회

Vloyd-소신공양이라면, 베트남의 틱꽝득 스님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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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공양이라면, 베트남의 틱꽝득 스님이 생각납니다. [180]

조회 973610.06.02 00:52

Vloyd 1984**** Vloyd님프로필이미지

5월 31일, 다음에서 문수 스님께서 소신공양을 행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소신공양을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베트남의 틱꽝득이라는 스님이죠.

 

틱꽝득 스님은 왜 유명해진 것일까요? 바로 1963년 6월 11일,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現 호찌민 시티)의 미국대사관 앞에서 휘발유를 몸에 끼얹고 불을 붙여서 소신공양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 소신공양이 일어났던 시점을 먼저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54년 제네바협정으로 북위 17도 기준으로 북쪽은 베트남 민주공화국(흔히 베트콩이라고 일컬음)으로 남쪽은 베트남국(State of Vietnam)으로 나뉘게 됩니다. 남베트남은 오딘지엠이 바오다이 황제를 퇴위시키고 대통령에 오르게 됩니다. 거기서 미국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베트남국을 베트남 공화국(Republic of Vietnam)으로 바꿉니다. 그러면서 남베트남이 취한 정책은 친서방(정확히 말해서 친미)정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주들의 입장이나 가톨릭교회를 존숭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기존에 있던 베트남 불교를 탄압하는 정책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그 당시 승려였던 틱꽝득은 남베트남에서 있었는데, 그 당시 국가 정책이 친 가톨릭교회 반 불교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가 소속된 사찰이 반정부 시위의 근거지라고 낙인이 찍혀서 그 사찰이 폐쇄당하는 모습을 봐야 했습니다. 결국 6월 11일,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에서 그것도 미국대사관 앞에서 소신공양을 행하기에 이릅니다. 당시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보면, 불길 속에서도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정좌자세를 취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걸로 인해 미국이나 서방세계에 크나큰 충격을 줬습니다.

 

이 사건이 난 뒤, 오딘지엠의 사실상 퍼스트레이디인 마담 누(오딘지엠의 동생인 오딘누의 부인)이 이 소신공양에 대해서 이렇게 망언을 뱉었습니다. "나는 어느 땡중의 바비큐 쇼를 보고 박수를 쳤다."

 

마담 누의 망언이 결국 남베트남의 민중들이 남베트남을 지지하지 않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러한 망언이 케네디 대통령조차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즈엉반민 장군이 이끄는 쿠데타 군(짠반짜, 위엔칸, 위엔반티에우, 위엔까오끼이 주축)은 친 불교성향의 군으로써 오딘지엠과 대척점 관계에 있었습니다. 오딘지엠에 승려들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쿠데타 군은 이에 대항해 대통령의 형제를 갈등하게 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이 있었던지 근 5개월 만인 11월 1일, 쿠데타 군은 거사를 감행합니다. 미국은 오딘지엠에게 망명요청을 하였으나 이에 거부하고 저항하다가 다음날 새벽 쿠데타 군에 체포되어 총살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동생인 오딘누도 총살됐습니다.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베트남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상황인식과 괴리감을 가진 권력층들이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담 누의 망언이 가져올 파급력에 대해서 아무런 대비책도 없는 국가가 "누가 국가를 위해 희생하려고 하겠느냐"?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도 사회가 바르게 가야 한다는 어느 수도자의 절규는 아닐까요? 사회나 국가가 그 목소리를 닫거나 소신공양자체를 폄훼하는 일이 있다면. 과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인 이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PS)틱광득 스님의 유체를 수습한 다음에 다비식이 거행되었는데, 틱꽝득 스님의 심장은 화염 속에서도 아무런 화상을 입지 않은 채로 움직였다는 일화는 베트남에서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