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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이 시대극/경제+정치+사회

'검은 백조'의 시대에 엉뚱한 처방만 내놓는 MB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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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과의 대화 이 글은 아고라 네티즌과의 활발한 토론을 위해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 참여한 글입니다. | 네티즌과의 대화란?

‘검은 백조(black swan)’란 용어는 비판적 합리주의자인 칼 포퍼가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을 제시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이는 쉽게 말해 수백만 마리의 흰 백조를 관찰하고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잠정적, 귀납적 일반화를 내렸다고 할지라도 이 명제는 ‘검은 백조’ 한 마리의 존재만으로도 허물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주지하다시피 포퍼의 이 이론은 ‘추측과 반박’, ‘열린사회와 그 적들’ 등의 저작을 통해 현대 과학철학과 사회철학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포퍼의 검은 백조를 언급한 까닭은 최근 또 다른 검은 백조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 월스트리트 투자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저서 'The Black Swan'이 바로 그것이다. 탈레브는 이 책을 통해 과거의 추세과 정규분포적 통계에 사로잡힌 예측과 대안은 검은 백조가 출몰하는 격동의 시대에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고 경제를 더욱 혼란에 빠뜨린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월가의 전문가들이 온갖 포트폴리오와 계량화된 위험측정치를 들이대며 위험은 통제될 수 있다고 떠벌리는 기만적인 현실을 꼬집는다, 그리고 비선형적으로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과거의 경험이 미래에도 선형적으로 연장될 것이라는 낭만적 가정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통렬히 비판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충격으로 다가올 것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과거의 연속이 아닌 미래, 과거의 대칭이 아닌 미래를 예측하고 위기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임을 지적한다.

 

 

 

 

서론이 길어진 이유는 지금이 ‘검은 백조의 시대’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대공항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라 일컫는 지금, 서브프라임사태로 리먼브라더스와 같은 글로벌 투자회사가 문을 닫고 금융위기와 부동산시장 붕괴가 연쇄적으로 도래하는 가운데, 실물경제의 위기가 겹쳐 서킷시티(Circuit city)가 파산보호 신청을 하고 GM의 목표주가는 0이 되었다. 급증하는 정리해고와 1000만이 넘는 실업자 수는 고용시장 악화를 가져오며 소비시장이 위축시켜 내수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외부적으로는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외환수급이 불안정해지고 수출이 감소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기업, 은행, 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극단의 시대에 이명박 정부가 너무나 평범한 정책, 그것도 대부분 실패로 증명된 정책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는데 있다. 시장 행위자들은 이명박 정부의 지지자나 비판자를 막론하고 이명박 정부가 향후 내놓을 정책들을 뻔히 예상하고 있다.(저금리기조, 대기업 위주의 감세정책, 환율정책, 부동산 부양책 등) 하지만 시장에서 이미 알려진 정보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경제학적 상식과 더불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경제가 일상적인 상황에서나 유효한 정책이지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효과는 커녕 부작용만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저금리 정책을 쓰면 유동성이 공급되고 경기가 활성화되겠지만, 지금처럼 극심한 경기침체를 동반하고 은행 등 금융권 자체가 불안한 상황은 그것과 다르다. 기준금리를 내려도 시장금리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엄청난 부동산 버블이 온존하고 있는 상황에선 금리인하 정책은 득보다는 실이 크다. 감세정책 또한 경제가 정상일 때는 대기업이 투자할 유인을 준다고 여겨지지만(이것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수출이 막히고 내수시장이 얼어붙는 현실과 이익을 산출할 수 있는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현 시점에선 효과가 없고 오히려 늘어나는 재정수요에 부담을 주고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은행권의 과도한 외화차입과 그에 대한 감독 부실, 집권 초기 고환율 정책, 그리고 명시적인 환율개입 방침으로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준 외환정책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종부세 인하, 건설업체 지원책과 같은 부동산 부양책은 건설사의 모럴 헤저드와 시장왜곡, 버블지속, 재정악화 등 수많은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

 

 

 

 

사태가 이런데도 정부는 일상적이며 자신의 이념적 성향에만 맞는 정책만 고수하고 있다. 현명한 지도자에겐 위기가 기회일진데,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재벌구조, 공기업 개혁 등 산적한 국가현안은 뒤로 제쳐둔 채 그날그날의 터지는 문제를 막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는 쓰다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이해관계자들에게 꽁꽁 둘러싸여 입에 쓰지도 않고 그렇다고 몸에 좋지도 않은 엉뚱한 처방만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가 경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의 당선(오바마의 당선이야 말로 검은 백조의 등장이다)이 가져오는 대북정책의 변화를 그저 일상적인 정권교체로만 받아들이는 모습은 극적인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명박 정권의 둔감함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핵비확산, 반테러의 정책목표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접근방식에선 현격한 차이를 보일 것임이 분명하고, 북한 또한 전래없이 당선자측과의 접촉을 통해 북미관계 개선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상황은 분명 부시행정부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2000년 부시의 당선을 보며 클린턴과 별 차이가 없을 거라는 안이한 생각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오바마 정부는 2년 뒤 중간선거를 앞두고 장기화될 경기침체와 수렁에 빠진 이라크 전쟁에 비해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상대적으로 가시적 성과를 내기 용이한 대북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이고, 부시정권의 핵문제에 국한된 의제설정에서 벗어난 북한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과 적극적인 양자회담을 모색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오바마 당선이후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미국은 근본적인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지극히 일반론적이며 선형적인 인식(과거의 연장선)을 보여주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들이 원하는 것만 보고자 하는 유아론(唯我論)적 사고를 되풀이 하고 있다고 볼 수있다. 김대중 정부 이래로 미국과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성향이 미스매칭되는 악순환과 그 부작용이 반복되고, 북미관계의 재편과정에서 소외될 한국정부가 향후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주도권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상황이 세계경제 침체와 국내 경기 침체, 당국자의 정책오류가 뒤섞여 있어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대북문제도 예측 불가능한 북한과 부시 정권의 강경일변도 정책을 이유로 남북관계의 경색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정책의 실정을 지적할 때 온갖 외생변수를 들이대며 자기변명과 책임회피로 일관해도 그것이 어느 정도 먹혀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언론의 탓도 크다)

 

이렇게 되면 극단의 시대가 언젠가는 끝난다는 당연한 사실에 자축하며 위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지진이 와서 건물이 다 무너진 후 똑같은 건물을 다시 지어 그 안에서 살 수 있는 이유가 건축가가 잘했다기보다 단지 지진이 안 일어났기 때문인 것과 같은 이치다. 건물이 무너졌을 때 건물을 내진 설계로 바꾸고 지진대비 훈련을 하지 않으면 지진이 올 때마다 그 건물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예기치 않은 극단값의 충격으로 다가오는 검은 백조를 역설했던 탈레브도 그것을 예측할 수 있는 도구와 선견지명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이것을 유사 검은 백조 혹은 회색 백조라 부른다) 그리고 열린 마음을 견지하고 시장이 주는 미세한 신호에 귀를 기울인다면 검은 백조를 제거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나 또한 이명박 정부가 검은 백조의 시대에 이념의 눈에 투영된 현실이 아닌 시장의 현실을 면밀히 살피고 효과적인 정책을 실행한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극심한 불황이 자연적으로 끝나길 무기력하게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자신의 편협한 이념과 주변의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단기적인 처방이 아닌 문제 해결과 국민 전체의 공익증진을 위해 환골탈태하는 실용정부의 참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달라진 이명박 정부의 모습이 국민에게 검은 백조로 인식될 때까지.

 


이 글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의 '정부 개혁' 토론방에 올라온 윤재웅님의 글입니다. 더 많은 정보와 깊이 있는 토론을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포럼을 방문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