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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이 시대극/경제+정치+사회

북새통 선생-노무현을 저주하는 경향신문은 독재의 기생충이 되려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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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저주하는 경향신문은 독재의 기생충이 되려하는가! [59]
  • 북새통 선생 북새통 선생님프로필이미지
    • 번호 620225 | 2009.04.17 IP 210.101.***.26
    • 조회 3496 주소복사

    독재권력과 족벌신문의 부스러기 잿밥이나 받아 먹고 민주주의는 공염불로 외우겠다는 경향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과연 경향신문이 독립된 수권신문으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저는 경향신문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미 길들여진 보조신문의 역할 밖에 못한다고 봅니다. 조중동이 앞장 서면 경향이 대립각을 종종 세울 수도 있습니다. 조중동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뿐입니다. 이것이 경향의 존재 이유 전부입니다. 조중동이 생산해 낸 화제에 기생하는 편한 길이나 걷는 신문이라는 말입니다. 주도적인 화제를 스스로 끌어갈 힘이 없는 신문이며 자신이 주도권을 쥘 기회가 주어져도 스스로 내팽개치는 신문입니다. 국가적 의제를 생산할 능력도 없고 단지 조중동이 생산해낸 의제가 성립할 수 있도록 중간에 작은 반대의 목소리만 집어넣는 역할이나 하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쥐어보지도 못한 민주주의나 개혁, 진보에 대해 말할 자격 조차 없습니다. 그저 민주주의를 홀라당 태워먹는 독재의 시기에 민주주의를 잠시 언급하면서 살아가는 데 익숙할 뿐 민주주의를 만끽할 분위기에서는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었다고 불평이나 해댈 줄 압니다. 오히려 독재 시대에 민주주의를 이야기해서 먹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독재 정권의 권력욕에 희생될 먹이감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존재로 있겠다는 의미입니다. 독재가 계속되어야 민주주의를 팔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정도 어렵다던데, 시민들의 응원도 버거울 것입니다. 몇 푼 되지도 않는 응원 받아보았자 생존에 별 도움도 안되고 광고는 떨어지고 정권의 탄압은 이어질테니 적당한 선에서 자신들의 존재의의나 찾을 것입니다. 조중동에 노골적으로 합세하는 것은 너무 눈치 보이고 그렇다고 정권의 눈 밖에 나서 독자생존할 패기도 없으니 그저 주류가 있으면 비주류로서 주류의 존재이유를 뒷받침하는 역할이나 하겠다는 작정입니다. 조중동이 헛소리하면 적당히 보조를 맞추어 그 화제를 논하면서 적당히 반대되는 입장이나 취하겠다는 식으로 겉으로는 시민들의 눈을 속여가면서 속에서는 조중동 프레임의 하부구조로서 생존을 모색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4월 16일 자 경향 신문의 굿바이 노무현이라는 칼럼 중 일부분입니다. 

    온통 검찰과 조중동의 언론플레이와 똑같은 이야기로 도배한 후에 붙여놓은 마지막 부분입니다.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집권한 그는 민주화 운동의 인적·정신적 자원을 다 소진했다. 민주화 운동의 원로부터 386까지 모조리 발언권을 잃었다. 그를 위해 일한 지식인들은 신뢰와 평판을 잃었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개혁이든 노무현이 함부로 쓰다 버리는 바람에 그런 것들은 이제 흘러간 유행가처럼 되었다. 낡고 따분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 이름으로는 다시 시민들의 열정을 불러 모을 수가 없게 되었다. 노무현이 다 태워버린 재 속에는 불씨조차 남은 게 없다. 노무현 정권의 재앙은 5년의 실패를 넘는다. 다음 5년은 물론, 또 다음 5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이제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은 곧 죽어도 은폐하며 철저히 보호하는 조중동과 달리 정직한 신문이라면 스스로의 반성도 촉구하고 잘못도 시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칼럼은 반성이나 자성의 촉구가 아닙니다. 조중동 보다 더한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개혁이든 모두 태워먹어서 다시 시민의 열정을 불러모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경향신문의 목소리는 참으로 해괴합니다. 지난 1년 간 촛불은 시민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일어난 것입니까? 지금 언론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하고 시민의 자유도 무자비하게 억압받는 순간에 민주주의의 소중함이나 개혁의 중요성이 사라졌습니까? 지난 5년 간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 공기처럼 자유롭게 대통령을 비판하고 정부의 정책을 비난해도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던 일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울 일이 없었다는 고백이 오히려 진실된 것 아닙니까? 국가 인권위가 제도화 되어 약자와 소수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있었으니 구태여 광장에 나와 몸부림치며 민주주의를 외쳐야만 세상이 한번 돌아봐주는 그런 열정에 호소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경향신문은 한마디로 자신들은 주도권을 쥐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럴 역량도 없고 의지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저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이 온통 민주주의를 뒤집어 놓으면 그 때서야 자신들은 이것은 너무한 것 아닙니까라는 작은 목소리나 내면서 조중동의 프레임이 우뚝 존재할 수 있도록 그 밑에서 떠받들고나 있겠다는 소리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한 목소리로만 채워질 수 있겠나요? 큰 목소리가 있으면 그에 따라 작은 목소리가 한켠에 붙어있어야 모양새가 나지요. 경향은 그렇게 조중동 한켠에 붙어서 떡고물이나 받아챙겨 생존하겠다는 것입니다. 항상 소수에 머물면서 그 자리에서 편하게 살겠다는 노예근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관제야당 노릇이나 하겠다는 것입니다. 전두환이 만들어 놓은 야당이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야당은 야당인데, 관제야당이었습니다. 정권이 활동을 허락한 인사들만 모여서 야당을 만들고 적당히 반대 목소리만 내서 여당의 존재를 받쳐주는 들러리 역할을 하는 야당입니다. 그것을 지금 경향이 하겠다는 소리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5년간 겨우 민주주의 진영이 수권을 하자 소위 진보언론이라는 경향은 언론의 주도권을 행사하지도 못했습니다. 언제 한번 민주주의를 이루어 내는데 앞장선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한번 가져본 적도 없는 발언권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시민이 기회를 주어도 받아먹지도 못했으면서 잃어버렸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시민이 노무현을 택한 적은 있어도 시민이 경향을 택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래도 스스로 선택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겨우 어려운 가운데 몇 번을 패배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것 조차 경향의 도움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힘겹게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 거듭된 패배에도 겨우 한번 승리하여 참여정부를 세웠고 곧바로 1년 만에 탄핵되면서도 다시 의회권력마저 교체하는 데 성공해놨더니 기다리는 것은 조중동의 십자포화 였습니다. 언론에서는 온통 수구 족벌신문들이 발언권을 차지하고 난동부린 것 아닙니까? 경향은 원래부터 발언권도 없었고, 기회가 와도 가져본 적도 없고, 그 전처럼 조중동이라는 족벌신문 곁에서 공생하는 짓을 벗어난 적도 없습니다. 그래놓고 고군분투하며 어렵게 승리한 참여정부에게 발언권을 날려먹었다는 헛소리나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런 신문들을 믿으면서 그래도 살리자라는 시민들의 간절함이 다 부질없는 짓으로 보입니다. 조선일보는 김영삼 시절에도 주도적이었고, 김대중 시절에도 그러했으며, 노무현 시절에도 지들 목소리 모두 내놓았습니다. 경향은 어디서 숨어있다 나온 지 모르겠지만 노무현 시절에 편하게 마음대로 비판하다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다시 안심하고 비판할 곳이나 찾고 있습니다. 조금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고 시민들의 거대한 촛불에 호응하다가 갑작스러운 탄압을 받고 상당히 당황했나 봅니다. 이제는 다시 만만해 보이는 노무현 정부나 찾으면서 그 시절 민주주의를 잃어버렸다고 헛소리하면서 적당히 조중동의 프레임 속에 붙어 살아갈 궁리를 하겠다는 태도입니다. 바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지금이 민주주의를 잃어버린 시기이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공기처럼 존재해 느끼지 못하던 민주주의를 홀라당 태워먹고 있는 것도 바로 지금 이명박 정권이랍니다.

     

    시민들만 불쌍합니다. 수권언론으로서의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는 신문에게서 희망을 찾고자 애타게 지지하는 시민들만 불쌍해지는 순간입니다. 독재권력을 지탱하는 하나의 축으로서 적당히 반대 목소리 내면서 공생하는 어용의 시대에나 어울릴 언론으로 살아남겠다는 것이 경향의 전략인가 본데, 그럴려면 차라리 없는 게 낫습니다. 관제야당처럼 편하게 생존하려는 습성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시대가 도래했나 봅니다.

     

    진정한 목소리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주도권을 쥐고 앞장설 수 있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민주주의나 하겠다는 어용 민주주의의 길로 경향이 자꾸 빠져드는 모습이 보입니다. 경향이 주장하는 민주주의, 진보, 개혁 그리고 발언권은 모두 독재 시대에 편하게 빌어먹고 살던 시절에 독재정권이 허락한 작은 떡고물 그 이상이나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독재에 기생하는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홀로 스스로 존재하며 독재를 배척하는 진짜 민주주의는 경향신문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과제이겠지요.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이 단지 독재에 기생하면서 살겠다는 경향이 이제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들이 써놓은 헛소리나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빨리 사라지는 것입니다. 독재권력에 길들여지고 그들이 제공하는 프레임에 기생하는 경향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암적 존재입니다. 과거의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를 쟁취한 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독재권력의 장기지속에나 현격한 공을 세울 경향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재앙입니다.

     

     

    <덧붙이는 글>

    경향신문의 칼럼이 말하는 것과 같이 경향을 향해 결론을 내려주었을 뿐입니다. 물론 고민은 항상 있습니다. 그래도 조중동보다 낫지 않느냐는 것은 맞는 말이지요. 하지만 잘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오히려 경향의 존재 이유가 조중동의 관제야당처럼 있는 한 차라리 대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경향의 헛소리에 대해 말을 못할 이유야 없지요. 제 글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경향신문 보는 사람은 훨씬 많습니다. 저보다는 경향이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지요. 경향이 자유로운 이야기를 말할 수 있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것입니다. 경향이 스스로 무조건 재앙이라고 말하는데 무슨 포용력을 발할 수 있겠습니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경향이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요.

     

    가끔 지식인 들 중에는 독재시절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로 남아있는 게 자신이 돋보이고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그러니 결국은 독재를 그리워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