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지 마세요.....<김제동>은 이런 사람입니다... [223]
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오랜만입니다.
김제동씨의 KBS “스타골든벨”의 급작스런 중도하차로
KBS와 권력과의 유착에 대한 의구심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인기 개그맨 김제동씨에 대해 네티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저는 KBS의 해명처럼 “때가 되어” MC는 바뀔 수도 있는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수 윤도현의 하차나 정권교체 이후 보도국의 물갈이를 보면서
또한 YTN 낙하산 사장 투입이나 정연주 KBS 사장의 불법적 교체를 보면서 과연 KBS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많지 않을 듯싶습니다. 보편과 상식을 벗어난 이 정부의 반민주적 행태를 보았을 때 이제 국민들은 “척하면 삼천리”를 볼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얼마 전 청와대 행정관이 독자적으로 250억원을 기업들로부터 강요했느니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출연 제의를 했느니 하는 숨은그림찾기 공방이 있었습니다. 제가 17대 국회에서 본 바로는 청와대 문광위 업무에 관련된 행정관의 힘으로는 이런 일을 독자적으로 할 수 없는 일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실체의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을 통해 명명백백하게 실체를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런 작업과는 무관하게 오늘 저는 제가 몇 번 만나본 “인간 김제동”에 대해
몇가지 말하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만난 인기 연예인(저는 대중문화 예술인이라 부릅니다.)중에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김제동씨입니다. 그의 인기가 아니라 그의 마음 씀씀이가 참 선하고 예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김제동씨는 이런 사람입니다.
김제동씨를 처음 만났을 때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 아마 그의 겸손함일 것입니다. “의원님! 저는 3천명 4천명 앞에서는 말을 잘 하는데요 1:1 대화를 할 때는 참 시선을 어떻게 둘지를 모르겠고 많이 어렵습니다.”라고 말을 곧잘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술한잔 할 때도 대화중에도 연신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할 때도 정말 어투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움이 묻어나옵니다.
김제동씨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누나들 밑에서
아마 막내로 자랐을 겁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애비 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듣는 것을 그토록 경계하셨다고 합니다.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하라고 가정교육을 철저히 받았다고 합니다. 남의 물건에 욕심내지 말고 내가 노력한 것만 내 것이고 내 것을 나눠줄 수 있는 마음씨를 어렸을 적부터 훈련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의원님! 저는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제가 벌어서 30평짜리 아파트 한 채도 장만했잖아요. 저희 가족 중에는 처음이예요. 아파트에 이사하던 첫날 어머니는 걸레로 방을 닦으면서 울고 누나는 부엌에서 청소하다 울고 저도 울고 했습니다. 가난하게만 살았던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온 것에 모두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는 이렇게 말을 하는 순간에도 눈가에 물기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저는요 제가 많이 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모두 제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제가 노력한 것도 있지만 대중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집 한 채만 있으면 됩니다. 나머지는 어떻게든 대중들에게 환원 할 생각입니다.” 실제로 그는 겸손하면서도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강남에서 약속을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모자를 푹 눌러쓴 청바지 차림에
배낭을 하나 메고 나타났습니다. 깜짝 놀라서 물어보니 평소 차림이라고 합니다. 전철을 타고 왔다길래 차는 어디에 두고 왔느냐고 물으니 차가 없답니다. 차가 왜 없냐고 했더니 그냥 버스타고 전철타고 다니는 것이 편하고 좋답니다. 이것이 2006년의 일인데 그 후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인공세에 시달려서인지 차를 구입했다는 말을 언뜻 들은 것 같습니다.
그는 만남 중에 어김없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이승엽선수 얘기를 꺼냅니다. 오늘 몇 타수 몇 안타를 쳤는데 컨디션이 좋았다 안 좋았다하며 그의 하루하루 건강 상태까지 세밀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대화중에 이승엽선수에게 국제전화가 걸려오면 그렇게 좋아라 할 수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김제동씨는 삼성 라이언스 대구 구장에서 무영시절 장내 아나운서를 했을 당시의 이승엽선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쌓아온 우정을 그는 절친한 친구로 유지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나요?
김제동씨는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윤도현의 대학가 공연시절에 분위기를 띄우는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공연 전에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데 하도 분위기가 안 떠서 생수통을 머리에 쏟아 붓는 퍼포먼스를 했더니 사람들이 요절복통을 하더랍니다. 온 몸으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 온 그다운 재치였다고 생각합니다.
“의원님! 1월 O일은 제가 참 미칠 것만 같은 날입니다.
김광석 형님이 가신 날이거든요. 그날은 혼자 모자 푹 눌러쓰고 소주 한 병 들고 한강에 나갑니다. 원없이 울고 옵니다.” 그는 정말 그랬습니다. 김광석의 음악과 김광석의 사상을 좋아하는 김광석 매니아입니다. 김광석의 역사와 인생 노래 거의 모든 것을 꿰고 있는 김광석 전문가입니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람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강 바람속으로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라는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를 부를 때는 감탄과 절규가 타고 흐릅니다. 그렇습니다. 김제동은 감성으로나 올바른 사상으로나 훌륭한 대중문화 활동가입니다.
“의원님! 형님! 말의 힘이 크기도 하지만 말이 무섭기도 합니다.
제가 교도소 위문공연 갔을때 마지막 인사말에 “다음에 또 올 테니 그 때 또 봅시다.” 했는데 얼마나 이말이 큰 실수입니까? 또 한 번은요. 제가 자~두 손을 들고 박수를 칩시다. 아니 그 쪽 왜 한손만 드는 거예요...두손 다 들라니까요! 했더니 그 분은 한쪽 팔이 없는 분이었어요. 어찌나 죄스러웠던지요. 정말 죽고 싶을 만큼 죄송했어요.”
그는 책을 많이 읽고 신문 스크랩을 해 두는 개인 도서관이 있을 만큼
성실한 노력파입니다. 그의 철학이 담긴 주옥같은 멘트는 우연한 재능의 발산이 아니라 그의 피나는 노력의 산물임을 저는 잘 압니다. “저는요 넘어지면 뭐라도 줍고 일어납니다.”라는 말을 하며 그의 어려웠던 일을 회상하던 그의 눈가의 진정성을 믿습니다. 저는 김제동씨가 부정한 권력의 비민주적 행태를 잘 극복하고 다시 더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중문화 예술인으로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영혼이 맑고
생각이 바른
재주가 많은 김제동 파이팅!!!
(혹시 이 글이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제동씨가 연락이 와서 지우라면 지우겠습니다. 그렇지만 김제동씨 우리 화이팅합시다. 좋은 날이 올 겁니다.) 글 다 쓰고 김제동씨에게 지금 문자메세지 보냈습니다.
"김제동씨 힘내시오."
MBC 100토론 손석희씨도 물러난다는 속보가 떳네요.
이명박은 김제동을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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