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생살이 시대극/경제+정치+사회

여름의문-아고라 일기-성탄절에도 끌어안지 못한 용산참사 [82]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839763&hisBbsId=best&pageIndex=3&sortKey=regDate&limitDate=-30&lastLimitDate=

 

 

 

아고라 일기-성탄절에도 끌어안지 못한 용산참사 [82]

  • 여름의문 summe**** 여름의문님프로필이미지
    • 번호 839763 | 09.12.26 00:12
    • 조회 3523 주소복사

    어제는 성탄절이었습니다. 교회나 성당 등 많은 곳에서 아기예수가 우리곁에 오신 것에 대한 축하연이 열린 자리가 만들어 졌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가난과 소외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그늘진 세상을 더 밝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탄절이 지났습니다. 성탄절 전야부터 성탄절까지 많은 사람들이 서로 행복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즐거움을 함께할 때 아직 용산참사로 희생당한 가족들의 마음은 동지섣달과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어릴 적 은하철도 999를 빼놓지 않고 본 적이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 8시에 아침 밥상이 물러나면 가족들이 모여 앉아 전주곡을 따라 부르며 오늘은 철이가 어떤 별에서 어떤 모험을 할지 그런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 시절 역은 나에게 먼 곳을 떠날 수 있는 장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틈만 있으면 역에 나가 기차를 보며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내가 꿈꾸는 세상으로 가보고 싶었습니다. 실제 학교를 빼먹고 다른 도시로 무작정 기차를 타고 하루 아무도 모르게 다녀온 적도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결국 엄마한테 들켜 죽지 않을 만큼 맞은 적도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나에게 역은 내가 사는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다는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왔고 그 기회를 찾아 도시로 가방 하나 들고 무작정 꿈을 향해 들어왔습니다.

     

    어릴 적 철이가 안드로메다로 가는 열차를 타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여행이 아름다워 보였다면 저는 청소년기를 거치며 작은 마을에서 대도시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은 대부분 소설 속에 나오는 못나고 바보 같았지만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소주 한 병을 안주도 없이 포장마차에서 비우며 사람들의 숨소리를 들을 때는 행복했습니다. 가진 것 없지만 사람 냄새 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내가 있다는 생각에 고맙다는 마음 가졌습니다.

     

    오래 전 용산역은 지금처럼 깨끗하고 잘 정돈 되지 않았습니다. 기차가 끊기면 몸을 흥정하는 사람들과 일단의 술에 취한 무리들이 지나가곤 했습니다. 그런 용산이 오늘 보면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겉으로는 너무나 좋아졌는데 그곳에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 누군가는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런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용산역에 올해 몇 번 갔다 왔습니다. 살다가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면 용산참사가 일어난 곳을 잠시 스치듯이 지난 적이 있습니다. 분명 사람이 살았고 그들은 이 땅의 국민이고 용산역을 보며 살아온 분들인데 왜 그들은 이방인처럼 취급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직 제가 철이 들지 않아 기차만 보면 그 예전 철이가 탄 은하철도 999가 생각이 납니다. 용산에서 희생당하신 분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그렇게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냥 자식들 안 굶기려고 매일 쉬지 않고 일을 했을 겁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 냉동고에 있다는 그 자체가 시대의 비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1년이 됩니다. 오늘도 용산서 출발하는 기차가 있습니다. 그 기차는 어떤 꿈을 싣고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는지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기차를 바라보며 꿈을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부끄럽다는 생각뿐입니다.

     

     2009년 1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