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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이 시대극/경제+정치+사회

쟝크리스토프-존로의 화폐이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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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로의 화폐이론(2) [17]

조회 48410.07.14 00:08

1.더 바보이론(The Greater Fool Theory)
2.튤립광풍(Tulipmania)
3.자유주조제, 암스테르담은행
4.존로Jhon Law
5.존로의 화폐이론(2)
6.미시시피버블
7.South Sea 버블
8.통화량의 증가와 투기버블
9.오스트리아학파의 과오투자 이론(Malinvestment Theory)
10.과도기....그리고 대안없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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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 이은 존로의 화폐이론 마무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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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in Murphy의 “The Evolution of John Law’s Theories and Policies 1707–1715”의 글을 보면, 1707년과 1711년 사이, 존로는 그가 제안한 토지은행의 방식을 영국은행과 동인도회사를 모방한 금융기관의 형태로 갈 것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토지로 금융상의 보증을 해주는 것이 더 이상 아니었다는 거죠. 존로의 다음 글을 보면 그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정확하게...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정부의 보증서는 영국은행의 경우처럼 민간부문으로 대출하고, 고정자본및 유동자산(보유하고있는 배, 거래소, 항구등의 주식)은 동인도회사의 경우처럼 정부 보증서(국채)로..."

 

17세기말과 18세기 초 영국은 수많은 전쟁을 치뤘고, 이 전쟁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은 오로지 지속적인 대출로 밖에는 충당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 만들어진 부채는 영국은행과 동인도회사의 대차대조표에 아직도 그 자료가 남아있는데 정부보증서, 즉 국채로 얻어진 것임을 분명히 명시해 놓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은행과 동인도회사, 그리고 훗날 South Sea Company 모두 최저금리로 국채를 매입하므로써, 그 대가로 금융및 무역에서의 독점적 특권을 부여받았다는 것 역시 존로의 화폐이론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대목입니다..

 

영국은행과 동인도회사에 흥미를 갖게되면서, 존로는 화폐의 형태를 어떤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관점을 더욱 확대시켜 나갑니다. 그러다가 1707년 초, 화폐와 무역이 출간된지 겨우 2년만에, 존로는 돈처럼 계정을 갖고 교환하는 어음, 1년 미만의 재무부 채권인 ‘Exchequer bills’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그 무렵 프랑스에서는 영국은행과 동인도회사에서의 경우처럼 돈이 주식의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머피교수의 글(Mémoire pour prouver qu’une nouvelle espèce de monnaie peut être meilleure que l’or et 1 argent)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새로운 돈의 형태에 가장 근접한 것은 동인도 회사이다. 이 회사의 자산이나 수익은 은행의 경우처럼 주식으로 전환되어 주주들에게 분배되었다. 그들은 교환소에서 현재가로 매일 거래했는데 일간지에서는 대중을 위해 가격정보를 담아 인쇄해서 배포했다. 이 주식은 상인이나 거래자들이 준비금처럼 돈을 보유해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거래당시 그 가격으로 주고 받기가 쉬웠다. 동인도회사에서 보유한 자산의 일부처럼 비용을 지불하기위해 이 주식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만일 그 당시 시장이율로 교환이 어려워 질 경우 채권을 교환소로 보내 정화로 바꾸어야 했지만, 이 주식은 교환이 (늘) 가능했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존로가 지칭한, 이른 바 새로운 돈이라는 '주식'은 "더 많이 사용되고 생산될수록 가치가 오히려 하락하는 은화와는 정반대"였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율에 따라 그 가치 역시 반드시 함께 오를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재무성채권과 환어음 역시, 은화와 마찬가지로 간주했지만, 그러나 주식들의 가치는 절대 떨어지지 않을것이며, 은에 비해 모든 면에서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로 그가 가지고있던 대안 화폐의 담보물로써 토지에 대한 관점을 점차 주식으로 전환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위의 “Mémoire...” 라는 글에서 존로는 그가 제안한 토지은행에 기반을 둔 금융시스템을 이 무렵만해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었지만, 사실 머피교수의 말에 따르면 이론상으로는 오히려 부채에 대한 청산에 더 많은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래의 인용글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생각한 돈이란 교환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우수한 금융수단으로 정의했다. 따라서 계정(청구), 재무부채권, 그리고 환어음은 교환을 용이하게 하기 때문에 법에 의해 돈으로써 보장받을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 "신용 les credits"은 존로가 추구했던 돈의 속성을 만족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기 때문이죠. 그의 의견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통제 가능해야 했지만, 뜻대로 되지않자 존로는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그렇다면 가치를 저장하기 위한 최고의 기능을 제공하자는 쪽으로 범위를 확대시키게 됩니다. 


일례로 그가 즐겨 언급했던 동인도회사의 주식은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위해 만들어진것이기도 했지만, 돈으로써 뿐만이 아닌, 생산적활동에 의해 그 가치가 완성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존로는 그의 통화시스템이 바로 이러한 생산적 자산과 연결되기를 바랬습니다. 그것이 그가 제안한 (토지의 생산성에 의해 통화가 보증되는)토지은행의 경우가 그랬듯, 이제는 회사의 자산으로까지 그의 사고를 확대 시키게된 까닭이었습니다.


이미 이러한 회사들의 주식은 나름대로의 시장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벌써부터 교환의 한 수단으로 이해되고 있었고, 그래서 존로의 관점, 즉 가치와 생산수단을 통합하여 리스크 악화를 간단히 해소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이러한 시각은 결국, 돈이란 자산을 기반으로 한 생산성과 연결되어있는 것이므로, 이미 그 가능성을 증명한 주식이야말로 가치를 저장하는 최고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이죠...


1711년, 존로는 이탈리아에서 은행을 설립하자고 사보이공작에게 권합니다. 이 당시의 제안서는 잉글랜드 은행의 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위의 내용처럼, 존로는 토지은행을 설립하려는 계획을 중단하고, 화폐를 공급하는 동인도회사와 영국은행같은 주식회사를 설립하는 제안서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잉글랜드 은행에 존로가 감명을 받았던 이유는 두가지 때문이었는데, 영국이 관여했던 전쟁에 들어간 비용을 장기간 대출해줄 수 있었던 능력과, 계속되는 스페인전쟁 비용으로 정화의 유출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거래는 계속 확대, 결국 화폐공급의 증가를 가져 왔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머피 교수는 '투린의 전투'가 일어났던 이탈리아 투린의 국립문서고에서 역사적인, 미출판된 그의 원고를 찾았는데, 그것은 존로가 사보이공작가의 아마데우스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동인도회사의 주식은 은행처럼 지분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들은 협상을 통해 보상을 받습니다. 상인에게 주는 금액에 거액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배당받은 자산을 동인도회사에 다시 투자하거나 은행에 예치 해 놓습니다. 그리고 현금이 필요하면 이들에게 내놓기도 합니다. 주식을 정화로 바꾸는것이 어렵다면, 그들이 현재의 시장가격을 거부하지 않는 한 협상이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화보다 주식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정화로부터 비롯된 수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식은 이미 생산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존로는 1705년 스코틀랜드에서 벌어진 금융위기 처럼, 과도한 전쟁 부채와 돈이 너무 적어서 일어난 통화적위기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1715년 프랑스의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때문에 존로가 정부부채의 일부를 갚기위한 감채기금(Sinking Fund)을 설립하고 화폐의 공급을 늘리는 은행을 설립하므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것은 그의 신념에 비추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은행이 벌어들일 수익의 75%를 받기로한 왕과 25%를 받기로한 존로 사이의 협상이 마무리되어 드디어 합작회사 형태의 은행이 세워 졌습니다. 그러나 왕이 가져갈 이윤에 대해 존로가 요구했던 계획은 다름아닌 프랑스의 부채를 갚기위해 쓰여지도록 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었었고 그렇기 때문에 두가지가 문제가 발생, 상충할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만일의 경우 은행에 돈이 부족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과  왕의 이윤으로 국가부채를 갚는다는...좀 미묘한 문제였죠...

이후 존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정책과 통화정책을 연계해서 집행하기로 합니다.


 “Mémoire sur les Banques...”에서 이와 관련된 개발을 계속 진행했고, 드디어 1715년 6월, 프랑스 당국에 수정안이 제출 되었습니다. 이 제안서에서 존로는 영국은행의 경우처럼 은행권을 직접 발행, 은행이 신용을 만들어 내도록 권고합니다.

 

또한 교환수단의 일로써 은행주식을 포함시키는것이 이익임을 상기시키는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당시 잉글랜드 은행의 주식은 액면가에 30%나 프리미엄이 붙은채 거래되고 있었으니 그 메리트를 놓쳐서는 안되는 거였죠...

 

이밖에도 존로의 제안서에는 Hotel de Sossions을 매입하는데 사용하는것도 포함되어있었는데, 이 호텔의 부지는 훗날 은행과 외환거래를 주요 업으로하는...증권거래소를 세우는데 사용하게 됩니다. 


비록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숱하게 거절 당하기는 했지만, 존로는 그의 "숭고하며 원대한 계획"을 지지하는 루이 15세의 섭정자, 메농뜨부인에게 이후에도 계속해서 편지를 썼습니다. 이 무렵, 존로의 계획들은 단지 은행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그의 이론에 포함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메농뜨부인에게 쓴 편지중 일부입니다.


"...그러나 은행은, 나의 생각으로는 단지 크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프랑스에 이로운 것을 일으키게될 변화로 유럽 전체를 놀라게 할 작업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 변화는 신용을 도입하거나 인도를 발견하여 얻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나는 법적 수단이 아니라, 풍부해진 정화를 사용하여, 돈에 대한 이자율을 낮추려는 왕의 부담을 덜어줄 것입니다. 인도에서 가져온 은괴로부터 주조된 프랑스 정화는 유럽으로 들여온 은의 양과 일치하는 만큼의 가치를 잃고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초기에 제안했던 신용은 가치를 더욱 확실히 할 것이며, 정화당 20~30%의 수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위의 편지 내용...결국 주식 얘기라는 것 금방 아실겁니다...

이렇듯, 머피교수의 발견을 통해1716년 6월에 General Bank 설립에 대한 인가가 되기에 앞서 향후 만들어질 미시시피 시스템에 대한 상당부분을 존로가 이미 구성해 놓았다는것은 분명해졌습니다. 아래의 표는 존로가 미시시피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위해 South Sea Company, 동인도회사 그리고 잉글랜드 은행의 자산 골격을 어떤식으로 따와 적용했었는지, 개괄적으로 그 윤곽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세개의 각기 다른 회사들과 미시시피와의 결부는 존로에게 세가지 목표를 현실화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은행권이나 예금과 마찬가지로 주식을 화폐로 간주하므로써 달성하게 된 화폐공급의 팽창, 

프랑스 부채의 관리, 그리고 실물 경제의 개발.... 

.......
 


초기, 존로가 만든 미시시피 시스템의 성공은 미시시피 주식회사의 버블을 이끌었을뿐만 아니라, 

영국의 South Sea Company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그로 인한 South Sea Company버블을 발생시키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그나저나 다음 글 부터는 미시시피 버블에 대해 쓰게 될텐데...

내용도 좀 길거니와 약간 난해한 점도 있습니다. 물론 이해 못할 정도까지는 아닙니다만...

그 당시 시대상과, 정부부채 문제, 그리고 청산의 과정과 독점권에 대한 부분의 설명에는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게 될 듯 싶습니다...


더우기 회사일의 구조적 변화가 있어서 시간을 내기가 쉽지않아 진도가 빠르게 못 나가는데다...

당분간은 글을 올리기도 어려울 것 같아...읽어 주시는 분들께는 미리 죄송스런 마음을 전합니다...


더운 날, 무쪼록 건강 잘 살피시구요...

항상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