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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이 시대극/미담상세리글모음

담담당당-이번 한일정상회담에는 관심이 유별나게 많이 간다

외교는 수사(레토릭)의 게임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이 아닌 전쟁이 있었다. 바로 한일관계다. 지금은 더 극심하다. 일본이 이제 패전 이후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사 재무장과 제국주의, 팽창주의로 이어지는 새로운 메이지 입국 재현이라는 탐욕을 버린 적이 없다. 오늘 같은 날은 변형된 식민과 팽창주의의 주의와 주장이 금융제국주의라는 형식으로 어디론가 차고 넘칠 때가 된 것은 아닌가 우려한다.

 

한일정상회담이 12일 서울에서 개최된다. 작년 이후 여섯 번째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와 세 번, 그리고 아소 다로 총리와도 세 번째가 된다. 일 년이 안된 사이에 정말 많이 만난 셈이다. 이번의 주제가 대략 흘러 나온다.

 

- 한일관계의 안정적 유지 발전을 위한 협력방안

- 금융협력 등 경제분야에서의 실질협력 증진

- 북핵문제 등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협력

- 지역 및 국제 무대에서의 협력 등

 

각각의 주제는 그 <흐름>이 이미 낯설지가 않다. 작년 한 해를 겪어본 탓이다. 한일 간은 그 어느 때보다 기묘할 정도로 한국이 일본에 숙이고 들어가는 형세를 보였다. 오히려 그를 통하여 국내에서 새로운 갈등이 야기됨에도 불구하고 정치세력 가운데서 친일매국 성향을 보이는 곳에서는 끊임없이 일본, 일본을 외쳤다. 일본 자랑하기에 바쁜 사람들도 많았다. 따라 배워야 한다, 선진화의 대상은 일본 모델 등의 말들은  너무 흔하게 나와서 식상할 정도다. 아예 본질적으로 접근한 경우도 있다. 엔화 경제권으로 서울이 들어가자는 식의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었다.

 

결국 금융협력이란 문제가 한일 간에도 닥쳤다. 엔케리 자금의 회수문제는 그렇다 치고, 엔화 스왑의 규모도 300억불 수준이 잡혀 있다. 일본의 한국기업, 부동산 등 금융과 실물을 대상으로 하는 사냥도 많아졌다. 일본 호텔의 체인이 부산, 대전으로 올라오는가 하면 제2금융권, 상장회사에 대한 지분인수, 금융회사의 지분은 물론이고 곳곳에서 비상장 주요 기술기업들에 대한 인수들이 직간접으로 벌어진다. 사채시장의 자금 이동도 눈에 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금융협력이 아니라 금융의 공집합을 만들기 위해서 애당초 공조를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한 형세다. 그런 게 흐름이다.

 

이러니 당연히 북핵문제 등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대북문제를 서둘 이유가 없었다. 강경기조는 한일관계가 좋고 남북관계가 좋은 경우를 만들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말해준다. 그래서 드러난 우스운 사회현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친북과 친일', '반북과 반일'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마구 겹쳐진 갈등이다. 이건 코미디다. 그런데 교묘하게 이를 이른바 이념전쟁으로 만드는 것도 일부 정치세력과 그에 공조하는 정권의 몫이었다. 실용주의를 외친 정부 치곤 이게 코미디가 아닐 수 없었다.

 

작년 3.1절 대통령의 연설문 중 일부다.

 

"한국과 일본도 서로 실용의 자세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형성해나가야 합니다. 역사의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미래의 관계까지 포기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 그 때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언어는 사고의 표상이다. 이 기표를 통해서 그 속에 숨어있는 기의는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그 때의 다른 용어 하나가 이제는 마음에서 거의 조건반사를 일으킨다.

 

"새 정부는 3.1정신을 선진 일류국가 건설의 지표로 삼을 것입니다."

 

여기서 선진은 왜곡되었다. 그 이후 다양한 언어로 '선진=일본이라는 모델'이라는 등식이 드러났는데, 그렇다면 위의 문장은 철저한 비문(非文)이 된다. 3.1정신은 항일정신이고 나아가 독립의지를 표현한 것인데, 어찌 일본 따라하기가 나올 수 있을까! 언어가 마구 꼬였다. 당시도 그게 지적되기는 했다. 시간을 보내고 나니 더 뚜렷해지는 게 보일 뿐이다.

 

이런 대목도 있었다.

 

"남북문제도 배타적 민족주의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민족 내부의 문제와 동시에 국제적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세계 속에서 한민족의 좌표를 설정하고, 더 넓은 시각에서 해결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3.1정신인 민족자주와 민족자존을 실현하는 길이다."

 

이 문장은 매우 중요했다. '배타적 민족주의'라는 단어보다는 <한민족의 좌표>라는 대목에서 재조명이 필요하다. 당시에도 이를 두고 말이 많았었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지금와서 보면 도무지 <한민족의 좌표=민족자주와 민족자존>으로 연결되고 있지를 못하다. 오히려 그 정반대의 현실이 존재한다. (이 부분은 따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회담의제의 마지막인 '지역 및 국제무대에서의 협력'이란 대목에서는 과연 한국의 오늘 위상을 되돌아보게 될 수밖에 없다. 자랑만 하지 말고 냉정하게 보자. 작년부터 이어져온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위치는 어떤가? 성공했다고 보는가? 일본과도 미국 내 각종 공식적인 동해의 표기로부터 대립을 보였다. 그것은 결코 <과거에 얽매이지 않도록 허용된>, 그래서 <미래만 있는> 한일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경우란 흔치 않다. 다시 몇 가지가 떠오르는 중이다. 일본기업의 부품공단 문제가 나오고, 한일 기업간의 협력을 위한 '한일 재계지도자 특별 간담회'가 11일 개최된다. 일본의 유력기업인-소위 친한파라는 사람들도 보인다. 여기서 친한파란 일제의 조선 강점이 정당했으며 바람직했다고 생각하는 그룹의 사람들이다-이 대거 참석한다. 사실상 두 정상은 여기서부터 참석을 같이한다. 그 다음날 12일 정상회담이지만 실제 이 자리에서 거론된 내용이 바로 속내가 될 것이다. 112층 제2 롯데월드도 있다. 지난번 한일재계 간담회에서 거론된 한일해저터널도 어느 시점엔가 다시 불거질 사안에 속한다. 일본의 한국 경제시장(금융, 실물을 포함한 전반적)에의 진출은 '협력'이란 이름으로 토의될 것이다.

 

나는 언론들이 이 회담의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보도할 것이란 걸 잘안다. 속 이야기가 나오는 예는 많지 않으니. 그러나 이번 회담은 사실 2009년 한 해를 결정할 중요한 시기에 벌어지는 매우 기묘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1월 20일 버락 오바마 미 정권이 출범하기 전에 한국 일본이 따로 만나서 서로 협의를 한다. 나는 미국의 시각이 참 궁금하다. 주한 미 대사가 백범기념관을 방문했던 모습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메시지가 있긴 했다. 그마저도 무시될 것이기는 하다. 원래 메시지란 그냥 메시지일 뿐이다. 1월의 격변은 11~12일을 고비로 쭉 이어질 기세가 보이는 듯 하다. 이것은 단기예보와 주간예보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