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궁금합니다.)....친일파 1등은 과연 누구일까요? [94]
"70만명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친일인사를 많이 만든다고 꼭 좋은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에 발간된 친일인명 사전에 수록된 4389명은 실증적 자료와 그 영향력으로 볼 때 결코 구제해 줄 수 없는 인사들 위주로 수록했습니다. 사실 저의 문중에도 친일인명 사전에 오른 어른도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에서 진행된 친일인명 사전 발간 국민 보고대회에
다녀왔습니다. 뜻 밖에도 이번 친일인명 사전 편찬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분의 인사말 마지막 부분을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친일인명 사전은 친일파 후손에게만 고통스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작업에 참여한 편찬위원들에게도 다른 각도에서 직간접적으로 고통스런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향후 전개될 각종 소송에서도 모진 난관이 예상됩니다.
친일인명 사전이 백범 김구선생에게 헌정되고 있는 모습
역사의 기록은 역사의 일기장이기도 합니다.
없었던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있었던 일이 없던 걸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기록은 있는 것은 있는대로 없는 것은 없는대로 기록되고 당대가 아니면 후대에게 준엄한 평가와 심판이 되어야 합니다. 하여 역사적 심판은 사사로운 감정이나 권력의 영향에 따라 조작되어서는 안됩니다.
100년이나 지난 일인데 좋은 게 좋다고 과거를 묻지말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그럴듯한 말이 일리가 있어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의 연속이라는 역사학자의 명제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과거에 대한 불의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반역에 단죄가 없다면 반역과 배반의 수레바퀴는 언제든지 되돌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에서 행한 민족 반역자에 대해
공소시효를 없애가며 철저하게 처형하고 난후 관용(똘레랑스)을 베푼것은 사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관점은 극악한 나찌 부역에 대한 행위중 언론에 대한 폐해를 가장 무겁게 심판한 점입니다. 요사이 며칠동안 박정희에 대한 <혈서>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당시의 영향력으로 보아 일개 군군 장교에 불과한 <박정희 중위>보다 조선일보의 친일 행위가 훨씬 악질이고 죄질이 무겁습니다.
프랑스의 경우라면 조선일보는 폐간입니다.
그 이유를 말해 볼까요. 프랑스의 경우 독일의 나찌정부에 협력했다하여 독일에 부역했던 민족 반역자에 대한 공소시효까지 연장하면서 처형을 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가장 철저하게 죄값을 물은 것이 부역 신문사들입니다. 그만큼 언론의 부역의 폐해가 컸다고 본 것입니다.
백범 김구선생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면....
이런 기준에 의하면 친일 백범 김구 선생에 의해 작성된 극악한 친일부역자 살생부 명단에 조선일보 방응모, 동아일보 김성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승만이 정권을 잡지 않고 김구 선생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면 이들은 처형되었고 조선, 동아는 폐간이 되었겠지요. 그 역사적 진실의 근거입니다. 오늘 백범 선생은 친일 인명사전을 헌정받으며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조선일보의 역사적 진실입니다.
방응모씨가 인수한 조선일보는 그 조선일보가 아닙니다.
1936년 그 이전의 조선일보(박헌영 등 사회주의 계열에서 발행)와 제호만 같을 뿐 사업자 등록번호가 전혀 다른 별개의 신문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한 조선일보는 현재의 조선일보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회주의 계열(박헌영 등의 주도)의 민족지였습니다. 현재 조선일보가 민족지라 주장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명백한 도둑질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친일분자 살생부에 조선일보 창업주가..
백범 김 구 선생은 해방 후 극악한 친일을 한 인사는 민족의 이름으로 처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시정부 정승학 정치부장에게 지시해서 만든 일제치하 친일부역자 263명의 살생부 명단을 작성했습니다.
(월간 중앙 2001년 8월 특종기사)
일제치하 조선일보의 조국은 일본이었습니다...일제치하 조선일보 보도내용.
1930년 후반에서 조선일보는 <국어 장려운동>을 펼치며 <국어학습코너>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국어학습을 시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 국어학습코너에는 놀랍게도 한글이 아닌 일본어였습니다. 조선일보가 생각한 국어는 일본어였습니다. 조선일보의 조국은 일본이었습니다. 이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 매년 일본 히로히토 천황의 생일날인 '천장절'만 되면 1면에 경하의 글을 올렸는데 1939년 4월 29일자 사설 <봉축 천장절>의 정신 나간 짓을 한번 살펴 볼까요. 임금보다 더 높여 부르는 '성상폐하'라는 호칭과 자신과 조선인들이 천황의 신하, 천황의 백성임을 강조하는 억조신서(億兆臣庶), 일본 천황에 대해 황공의 극존칭인 성황성공(誠惶誠恭), 천장절을 몸서리치게 축하한다는 동경동하(同慶同賀) 기타 등등. 정말 몸서리 쳐집니다.
프랑스에 민족반역자에 대한 공소시효은 없었다.
프랑스는 독일 치하 겨우 4년 동안의 부역자를 공소시효를 없애 가며 사형에 처했는데, 공식적으로 발표한 숫자만 1만1천2백 명이고 비공식적으로는 12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다른 유럽국가에 비하면 관대한 편이랍니다. 부역행위로 구속된 사람이 숫자로 프랑스 10만 명당 94명, 벨기에 5백96명, 네덜란드 4백19명, 노르웨이 6백38명에 이른다고 합니다.(조아세 발행 '딱'지 참조)
똘레랑스는 철저한 반역자 처벌후에...
보시다시피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는 철저하게 민족 반역자에 대한 단죄를 한후에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일제로 부터 독림한 이후 단 한명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 친일파가 없습니다. 오히려 1949년 독림운동가의 상징 백범 김구선생이 암살되는 통탄할 또 다른 반역이 있었습니다.
일제시대 조선일보나 박정희나 현재의 조선일보나 현직대통령이나...
오늘 친일인명사전 국민 보고대회 장소가 없어 황급히 백범 묘역으로 옮겨지는 현실이나 1949년 백범 선생이 암살되는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940년대 일본 천황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는 박정희나 조선일보나 오늘의 조선일보나 현재의 대통령이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은 시작입니다.
일제에 아부하고 충성을 했던 경찰 행정관료 등 8만명이 일제히 이승만의 귀국과 함께 친미의 옷을 갈아입고 반민특위가 좌절시키며 시작된 반동과 반민족 행위에 대한 단죄는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친일파는 일제시대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 더욱 교묘하고 악랄하게 우리사회에 독버섯처럼 버젓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친일파의 맨 앞자리는 조선일보입니다.
와글와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친일 인명사전 범 국민 구매운동!!!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찬성 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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