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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이 시대극/경제+정치+사회

용연-제가 아는 집안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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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집안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369]

  • 용연 k01*** 용연님프로필이미지
    • 번호 808266 | 09.11.09 01:22 IP 121.140.***.10
    • 조회 49273 주소복사

     경술국치(한일합방) 이전  수안보 일대에 거대 지주가문이 있었습니다.

     수안보 일대의 땅은 거의 다 그 가문의 것이었습니다.

     

     이 가문은 일본이 한양으로 진격할려면 꼭 거쳐야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때문에, 경술국치(한일합방) 이전 일본군이 서울로 진격할 당시

      일본군이 그 집안에 들어가 물을 달라고 청했고

      가장 어른이시던  5대조 할아버지께서  어디서 일본인이 조선에 발을 들이냐며...

     당장 나가라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화를 내셨다 합니다.

     그 모습을 당시 일본군들의 통역하던 분이 '노망난 노인네'라 설명하여... 멸문지화의 화를 면했다고 합니다.

     (후손들에게 불의에 굴복하지 말라.고 지속적인 가르침을 주었던 집안이지요) 

     

     의병운동의 자금을 대주던 집안이었습니다.

     

     경술국치(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시작합니다.

     그 때 많은 조선인들은 내 국가는 '조선'이지 '일본'이 아니다.

     '토지조사사업' 에 '참여' 하는 것은 나라를 등돌리는 일이다.

     일본을 인정하는 것이다. 라며... 응하지 않았습니다.

     (토지 조사사업 당시 주인 없는 토지가 그렇게 많이 나왔던 이유입니다.)

     

    당연히 그 집안 또한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 집안이 보유한 토지는 일본에 협조한 분께 넘어가게 됩니다.

    ( 일본에 협조했던 분이 신고하지 않은 토지를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신고했기 때문입니다)

     

     의병운동과 광복운동의 자금을 대주던 그 집안은

     토지조사사업 이후 급격하게 몰락하게 됩니다.

     

     이 당시 그 집안사람들은 그 지역에 신망을 얻고 있던 거대지주였고

    또, '최고 인테리 계층'이라 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에 협조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그렇게 집안은 몰락하고 집안사람들은 강제징용을 피해.

    광복운동에 힘을 보태주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흩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광복이 됩니다. 다들 희망에 찬 얼굴로 기대했습니다.

    친일인사(민족배반자)들은 잡혀갔고

    사람들은 이제 원상태로 돌아오겠다. 민족을 배반한 이들은 처벌 받고

    정의가 살아움직일 거라 생각하며 하면서 마음껏 기뻐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잡혀갔던 민족배반자들은 풀려나오고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직책을 앞세우며...

    독립운동가들과 자금을 대주던 이들을 잡아 갔습니다.

    그 중의 일부는 '빨치산' '빨갱이'란 이름으로 죽임을 당하고.....

     

    그를 피해 고향을 버리고 타 지방으로 유랑을 떠나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일부 지식인들은 월북을 하기도 했고요...

     

    하여간 이 집안은 철저하게 몰락하고 맙니다.

    민족과 나라를 위해 힘을 살은 죄로 말입니다.

    배우지 못한 상태의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후손들만 남긴상태로.....

     

    이게 보통 독립운동가와 그와 연계된 가문의 모습입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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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영화같은 일은... 광복이 되고 그 후손들이 큰 후에 일어나지만  길어지니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 후손 중 한명이 선조가 그랬던 것처럼 국가를 위해 민족을 위해

    잘나가던 중견기업을 버리고 일제가 왜곡시킨 한국사를 바로잡기 위해

    사비로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충당해가며

    사회생활, 가족, 사회적 직위, 건강을 비롯한 모든 것을 투자해 연구를 했다는 사실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연구성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단군조선의 입증과, 그 선대국가인 신시의 발굴로 한국사를 1만년 가까이 끌어올림

    (이 단군조선과 신시의 역사가 바로 세계 최초의 문명인 요하문명입니다)

    기자조선의 허구성 입증, 연나라 장수 진개가 허구의 인물이라는 사실 입증

    연나라의 조선동호 침략설 또한 허구...

    위만조선은 하북성 북쪽에 있던 국가였다는 사실,

    단군조선의 후계국가는 기자조선 위만조선이 아니라 중국 한나라 황제만 붕어시 입을 수 있는 수의 옥갑을 부여왕 등극시 한사군의 하나에 두고 부여왕 붕어시 바쳤을 만큼 강대국이었던 천년제국 부여라는 사실

    고구려 백제의 가르쳐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초기 역사 재고찰

    중국 고대국가들의 위치 재정립, 한국 고대국가들 위치 재정립등입니다.

     

    재야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류'를 위서라 부정한다는 이유로

    강단사학이라 배척당하고

     

    강단사학계에서는 그들과 똑같은 사서와 유물을 가지고 연구하였으나.....

    소수파라고 무시당하고 있는 분입니다.

    (또 이분이 워낙 소수파이고 힘이 없기 때문에

     이분의 연구결과 중 일부는 타 학자의 학설인 것처럼 언론에 소개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연구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다만. 국가를 위해 희생한 조상의 후손 중...

    그 조상의 뜻을 이어가 스스로를 희생하는

     '후손' 이 나올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